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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전통주 아이락의 역사와 즐기는 법

by nottheendwrite 2025. 10. 19.

초원의 바람을 담은 술, 아이락

몽골 전통주 아이락의 역사와 즐기는 법

 

 몽골을 여행해 본 분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저녁이 되면 유목민 텐트에서 향긋하고 시큼한 냄새가 난다.”는 것인데요, 그 냄새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이락(Airag)’이라는 몽골의 전통주입니다. 저는 몇 해 전,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한 게르 캠프에서 아이락을 처음 마셨습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오던 저녁, 주인이 작은 그릇에 따라준 뿌연 흰색 음료는 겉보기엔 막걸리나 요구르트 같았지만, 첫 모금에서 입안을 감도는 산뜻한 산미와 알싸한 기운에 단번에 ‘이건 술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에게 아이락은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자, 계절과 리듬에 맞춘 전통, 그리고 손님을 환영하는 가장 진심 어린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이락의 유래와 역사, 어떻게 만들어지고 마시는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이락이란 무엇인가? 말 젖에서 태어난 술

‘아이락’은 몽골어로 발효된 말 젖을 뜻합니다. 말이 젖을 생산하는 시기는 보통 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짧은 기간이며, 이때 생산된 신선한 젖을 항아리나 가죽 부대에 넣고 수천 번 휘저어 발효시켜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유산균이 활성화되며,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가벼운 탄산감과 2~3%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음료로 변화합니다. 비주얼은 걸쭉한 우유 같지만, 맛은 전혀 다릅니다. 시큼하면서도 톡 쏘는 탄산감, 그리고 약간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두 모금 마시다 보면, 입 안에 감도는 유산 발효 특유의 청량함이 의외로 중독적이기도 합니다. 아이락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료: 말 젖 (낙타나 양 젖으로 만들기도 함)
  • 도수: 평균 2~3%, 일부 지역은 최대 5%까지
  • 색상: 희뿌연 흰색, 요구르트와 유사
  • 맛: 새콤함 + 약한 탄산 + 고소한 우유 맛
  • 제조법: 전통 가죽 부대에 넣고 하루 수천 번 손으로 휘저어 발효

 무엇보다 아이락은 유목민들에게 영양 공급원이자 생계의 수단이기도 했는데요, 몽골 초원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말 젖을 발효시킨 아이락은 식량 보존이 어려운 시기에도 중요한 단백질과 수분 공급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칭기즈칸도 즐긴 술? 아이락의 유래와 역사

 아이락의 역사는 몽골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칭기즈칸의 군대 역시 원정 중 아이락을 마시기도 했으며 장거리 이동 시 탈수와 영양 결핍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락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몽골 유목문화 속 ‘계절의 의식’처럼 존재합니다. 매년 늦봄부터 여름까지 말이 젖을 생산하면, 각 가정에서는 아이락을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갑니다. 가죽 주머니에 젖을 넣고 하루 수천 번씩 저어야 하는 노동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중요한 일이며,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전통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정성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일까요? 아이락은 초대와 환영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손님이 게르(몽골식 전통 천막)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내오는 것이 바로 아이락입니다. 한 잔의 아이락은 환대의 마음이자, 유목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몽골 여행을 하듯 아이락을 즐기는 법

 아이락은 일반적인 술처럼 잔에 따르거나 시원하게 얼려 마시는 스타일의 술이 아닙니다. 대개는 나무 그릇이나 금속 컵에 소량씩 따라 마시며,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자연의 힘을 음미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몽골에서는 아이락을 아침에 마시는 경우도 많으며, 숙취나 피로 해소에도 좋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지만, 유산균과 젖산 발효로 인한 장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들도 일부 존재합니다. 한국에서 아이락을 직접 마셔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부 몽골 문화 축제나 국제 전통음식 행사를 방문하면 시음해 볼 기회가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몽골 현지에서는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도 아이락을 페트병에 담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접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아이락을 즐길 때면, 몽골의 광활한 초원과 순수한 삶의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자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일까요? 마치 그 자체로 몽골의 문화이자 역사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아이락의 현대에서의 계승과 변화

 현대 몽골에서도 아이락은 여전히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의 식탁에 오릅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가정에서 직접 발효 과정을 거치지는 않으며, 일부는 현대적 제조 방식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이락은 여전히 가장 몽골다운 술로 인식되고 있으며, 몽골 정부에서도 전통문화 보호의 일환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럽이나 일본, 한국에서도 발효 유제품의 일종으로 아이락에 관심을 가지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며, 건강 음료 또는 전통주로서의 수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술이 단지 알코올음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락은 사람과 말, 자연의 공존 속에서 태어난 전통이고, 그 속엔 유목민의 삶과 자연에 대한 존중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아이락은 몽골의 시간이다

한 잔의 술이 때로는 그 나라의 문화를, 철학을, 사람들의 삶을 가장 진하게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아이락이 바로 그런 술입니다. 몽골의 거친 자연과 조용한 초원,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담긴 이 술은, 마시는 이에게 자연을 느끼는 것처럼 깊고 조용한 감동을 줍니다. 한국에서 쉽게 마실 수는 없지만, 언젠가 몽골을 찾게 된다면 아이락을 꼭 한 번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한 잔 안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유목의 지혜와, 땅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