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설지만 묘하게 끌리는 중국 술 이야기
중국을 몇 번 여행하다 보면, 이 나라의 술 문화는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 ‘사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회식 자리에서 술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는 것은 물론, 오랜 역사 속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술의 쓰임과 의미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현지 식당에서 마주한 고량주, 약주, 백주 같은 전통주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처음 마셨을 때는 낯설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이 술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죠. 이번 글에서는 중국 전통주 3대 주류인 고량주, 약주, 백주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술의 맛과 향,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문화까지 함께 느껴보실 수 있도록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강렬한 향 속에 담긴 고량주의 매력
중국 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고량주’ 일 겁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술인데요, 고량주는 수수의 한 품종인 ‘고량’을 원료로 빚어낸 술로, 중국을 대표하는 증류주입니다. 도수는 일반적으로 50도 내외, 가장 강할 경우 6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편입니다. 제가 처음 고량주를 마셨던 건 북경의 한 식당에서였습니다. 소주잔보다도 작은 잔에 따라진 술을 보고 ‘소주처럼 맑고 투명하네? 그런데 양이 좀 작은 것 아닌가?’ 했지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술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듯한 묵직함,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코끝에 남는 특유의 향이 강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마셨던 중국인 친구는 “마오타이(茅台)는 술이 아니라 예술이야”라고 말했죠. 실제로 마오타이, 우량예, 루저우라오자오 같은 유명 브랜드는 중국 내에서도 최고급으로 평가받으며, 외교 행사나 국가 행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술입니다. 고량주는 숙성 기간이 길수록 향이 부드럽고 복합적이며, 술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중국식 위스키’라는 별명도 붙을 만큼 진한 인상을 줍니다. 중국의 전통 잔을 사용해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며, 향신료가 강한 요리나 육류 요리와 함께 먹었을 때 조화가 뛰어납니다.
술이자 약, 약주의 매력
한국에도 ‘약주’라는 표현이 있지만, 중국에서의 약주는 조금 더 실용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말 그대로 술에 약재를 우려낸 술, 즉 몸을 위한 술로 분류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간 한방술’에 가깝달까요? 중국의 약주는 종류가 정말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인삼주, 뱀주, 구기자주, 사슴뿔주(녹용주) 등이 있으며, 그 목적도 면역력 강화, 관절 건강, 혈액순환 촉진 등으로 나뉘곤 합니다. 어떤 제품은 직접 양조한 술에 약재를 담가 집에서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놀랍게도 어떤 것은 약국에서 반의약품처럼 판매되기도 합니다. 제가 마셔본 인삼주는 도수가 35도 정도였고, 첫 향에서 약초 특유의 쌉싸름함이 확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마신 뒤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뜻했죠. 한 잔 마시고 나면 몸이 조금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효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심신을 안정시키고 잠자기 전 소량 마시는 용도로 즐기기 좋았습니다. 중국에서 약주는 술이라기보다는, 몸을 돌보는 생활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술 하나에 중국의 전통 의학과 음식 문화가 녹아든 것입니다.
깔끔함 속에 향을 담은 백주의 매력
‘백주(白酒)’라는 이름만 들으면, 단순하게 '색이 흰 술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상은 맑고 투명한 증류주입니다. 한국 소주처럼 투명하긴 하지만, 그 맛과 향은 전혀 다릅니다. 백주는 중국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술로, 지역마다 제조 방식과 향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고량주와 백주의 경계는 조금 모호한데요, 어떤 지역에서는 고량주 자체를 백주로 부르기도 하고, 때론 같은 제품이 두 가지 이름으로도 통용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백주가 고량주보다 향이 더 가볍고 깔끔한 맛을 지닌 술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주를 구분할 때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요, 바로 ‘향형(香型)’입니다. 이는 술에서 느껴지는 향의 유형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대표적인 향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농향형: 향이 진하고 무겁고 복합적
- 청향형: 깔끔하고 깨끗한 첫 향, 목 넘김이 가볍다
- 장향형: 발효 냄새와 장류 비슷한 향이 특징
- 미향형: 은은하고 단맛이 도는 향
저는 개인적으로 청향형 백주를 처음 마셨을 때 그 깔끔함에 놀랐습니다. 도수가 높긴 했지만, 입에 머금었을 때 향이 산뜻했고, 입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백주는 가볍게 즐기고 싶을 때, 또는 중국식 해산물 요리나 담백한 음식과 함께 마셨을 때 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중국 전통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술이라는 것이 그저 취하기 위한 음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량주는 긴 시간 숙성과 정성을 담은 ‘정제된 향’, 약주는 몸을 돌보는 ‘지혜의 물’, 백주는 지역마다 개성을 품은 ‘맑은 감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중국 전통주를 접할 기회가 아직은 많지 않지만, 요즘은 일부 마트나 온라인 몰, 중식당 등에서 소흥주, 마오타이, 백주류 제품들을 점점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할 때는 낯설 수 있지만, 각 술의 특징을 이해하고 음미해 보면 그 속에서 발견되는 풍미와 문화가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