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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류 탐방

중앙아시아 삶을 담은 술, 쿠미스(Kumis)의 지역별 차이와 의미

by nottheendwrite 2025. 11. 1.

유목민의 술, 쿠미스의 탄생

 중앙아시아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들에게 쿠미스는 단순한 술이 아닌 생존의 방편이자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쿠미스(Kumis)는 발효된 말젖으로 만든 전통 유제품 알코올로,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널리 전해져 내려오는 독특한 주종입니다. 이 술은 단백질과 유당이 풍부한 말 젖을 이용해 만들어지며, 유산균과 효모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낮은 도수(통상 1~3도)의 유산 발효주가 됩니다. 쿠미스의 기원은 기원전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일찍부터 말 사육과 유제품 문화가 발달했으며, 말 젖을 마시거나 발효시켜 섭취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습니다. 유목 생활이라는 특성상 이동 중에도 저장성과 영양을 유지할 수 있는 식음료가 필요했고, 쿠미스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게다가 위생적인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가볍게 발효된 쿠미스가 안전한 음료로 여겨졌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쿠미스는 단순한 전통주를 넘어, 초원의 생존 전략이자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쿠미스의 제조법과 지역별 변형

 쿠미스의 전통 제조 방식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입니다. 신선한 말 젖을 나무통이나 가죽 부대에 담고, 하루 이상 지속적으로 저어주는 과정을 반복하면 자연 발효가 시작됩니다. 이때 사용되는 미생물은 환경에서 유입된 자연 효모와 유산균이며, 온도나 습도에 따라 발효 속도와 풍미가 달라집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리 만들어둔 쿠미스를 소량 넣어 발효를 유도하는 전통도 존재합니다. 이는 일종의 스타터(Starter) 역할을 하여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려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쿠미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형 양조장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만듭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유산균이 더 강한 ‘초강발효 쿠미스’도 존재하며, 이 술은 소화가 어려운 육류 식단과 함께 섭취했을 때 위를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몽골에서는 쿠미스와 비슷하지만 증류하여 도수가 높은 ‘아이락’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같은 발효주 계열이라도 나라마다 기후, 생활 방식, 소비 목적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로 분화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쿠미스의 도수가 낮아 알코올로써의 역할보다는 건강 음료나 일상적인 유산발효 식품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술이 곧 약이자 영양이라는 오랜 관념과 연결됩니다. 또한 최근에는 건강식 트렌드에 따라 유산균과 단백질이 풍부한 전통발효식품으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전통? 쿠미스가 가진 문화적 의미

 쿠미스는 중앙아시아의 유산이자 상징적인 음료이지만, 현대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그 존재감이 점차 위축되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젖말을 기르는 유목 문화가 감소하면서 쿠미스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말 젖은 젖소보다 생산량이 적고 짜내기 어려우며, 보관이나 유통에도 까다로움이 뒤따릅니다. 이러한 조건은 쿠미스의 대중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쿠미스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일부 농촌에서는 쿠미스 관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에선 동결건조 기술이나 유산균 캡슐 기술을 이용해 쿠미스를 보다 편리하게 유통할 수 있는 형태로 재가공하고 있습니다. 국외에서도 최근 유럽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말젖 발효유'라는 이름으로 건강식품으로서의 쿠미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쿠미스가 과거의 유산을 넘어 글로벌 발효 음료 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문화적으로도 쿠미스는 단순한 전통주를 넘어 '중앙아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과거에는 쿠미스 한 잔을 건네는 행위 자체가 ‘당신을 손님으로 존중합니다’라는 무언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쿠미스의 생존은 단지 음료 산업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 보존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중요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쿠미스의 글로벌 진출 과제

 쿠미스는 최근 웰빙 열풍과 더불어 건강한 유산발효 음료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케피어(Kefir)나 콤부차(Kombucha)와 같은 발효 음료가 인기를 얻으며, 그 연장선에서 쿠미스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말 젖을 원료로 한 유산발효 제품이 고급 건강식품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장 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쿠미스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장벽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바로 원료의 공급입니다. 말 사육이 활발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말 젖을 구하기가 어렵고, 기존 유제품보다 생산 단가가 높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향과 맛의 이질성입니다. 쿠미스 특유의 신맛과 발효 향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맛의 균형을 조절하거나, 다른 과일 향 등을 첨가해 음용성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합니다. 단지 건강 음료로만 쿠미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함께 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몇몇 다큐멘터리나 음식 전문 프로그램에서는 유목민과 함께 쿠미스를 마시며 초원의 삶을 경험하는 장면이 연출되며, 이로써 술 한 잔이 주는 감각을 넘어선 ‘이야기와 풍경’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쿠미스는 아직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술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술입니다. 낮은 도수의 유제품 발효주로서 건강성과 전통성을 동시에 갖춘 독특한 주종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쿠미스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이 전통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대화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술이자 삶이었던 쿠미스

중앙아시아 삶을 담은 술, 쿠미스(Kumis)의 지역별 차이와 의미

 

 쿠미스는 단순한 유산발효 음료를 넘어서, 초원을 살아낸 사람들의 지혜와 땀이 녹아 있는 술입니다. 산업화 이전의 삶, 인간과 가축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주제가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쿠미스를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 문화적 깊이와 지속 가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통은 반드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쿠미스는 그 증명입니다. 고대의 초원에서 탄생했지만, 현대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설 자리를 찾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의 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