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라고 하면 포도를 기본 원료로 한 서양의 전통 술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에는 그에 못지않게 오랜 역사와 독창적인 양조 문화를 지닌 꿀 와인이 존재합니다. 바로 에티오피아의 '테즈(Tej)'입니다. 이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에티오피아인의 삶과 축제, 전통의 일부로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유산입니다. '커피의 나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에서 또 하나의 발효 문화를 보여주는 테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커피처럼 테즈 또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가족과 이웃,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현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 곁에서 테즈 양조 과정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테즈는 단순히 소비되는 술이 아니라 집안의 전통으로서 계승되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다양한 지역에서 테즈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이러한 차이는 지역 간의 정체성과 문화를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테즈는 단순한 꿀 와인을 넘어, 에티오피아의 전통, 지역성, 공동체적 가치가 한데 어우러진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전통 꿀 와인 테즈란 어떤 술인가?
테즈는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꿀 발효주로, 기본적으로 물, 꿀, 그리고 일종의 향신료인 '게쇼(gesho)'를 혼합해 만드는 술입니다. 이 게쇼는 에티오피아 고유 식물로, 유럽 와인의 포도껍질이나 홉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발효를 촉진시키고 쌉싸름한 맛과 독특한 풍미를 부여합니다. 게쇼는 말려서 가루로 만들거나 껍질째 사용되며, 발효 중에 미생물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해 테즈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적으로 6~12도 사이지만, 숙성 기간이나 꿀의 비율, 발효 환경에 따라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테즈는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반면, 어떤 테즈는 목 넘김이 강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처럼 다양한 테즈의 맛은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지역별 전통에 따라 달라지며, 에티오피아 가정에서는 그 집만의 고유한 레시피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주로 집에서 직접 빚어 마시며, 손님을 대접할 때나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필수 주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테즈는 맛뿐만 아니라 향도 독특하여, 마시기 전부터 향으로 분위기를 물들이는 매력을 지닌 술입니다.
전통 도기 '베르렐라'에 담긴 테즈의 정취
테즈는 '베르렐라(Berelle)'라는 전통 병에 담겨 제공됩니다. 이 병은 목이 길고 끝이 좁아지는 형태로, 일종의 실험실 플라스크를 연상시키는 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도기나 점토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유리 재질로 된 제품이 더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형태만큼은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 베르렐라는 에티오피아 술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베르렐라는 단순히 술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테즈의 풍미를 보존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하는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투명한 병 속으로 테즈의 황금빛 액체가 보이며, 이는 자연의 색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음용 시에는 입을 병에 대지 않고 살짝 기울여 술이 입안으로 흘러들도록 하는 방식이 예의로 여겨졌으며, 이는 위생과 격식을 동시에 반영한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예절과 도구들은 단순한 음주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에티오피아의 전통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 됩니다. 베르렐라 하나만으로도 테즈의 문화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셈입니다.
테즈의 사회적 의미와 공동체적 가치
에티오피아에서 테즈는 단순한 술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이자, 축제와 의례의 중심이 되는 문화적 자산입니다. 결혼식, 종교행사, 추수감사절 등 주요한 전통 행사에는 테즈가 반드시 함께하며, 이를 통해 가족과 이웃,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합니다. 특히 테즈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한 병의 테즈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테즈 양조는 에티오피아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가내 활동 중 하나입니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비법이 전해지고, 이 과정을 통해 가정의 전통과 지혜가 계승됩니다. 이는 단순한 요리법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테즈를 상품화하여 소규모 여성 창업의 기반으로 삼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테즈는 경제적인 자립 수단으로써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테즈가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통이 현대 사회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테즈와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과의 페어링
테즈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풍미를 지니지만,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과 함께할 때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합니다. 가장 흔히 곁들여지는 음식은 인제라(Injera)로, 발효된 곡물 반죽을 얇게 부쳐낸 팬케이크 같은 음식입니다. 인제라는 다양한 스튜 요리인 '왓(Wat)'과 함께 제공되며, 테즈의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맛은 이 매콤하고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들과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또한 테즈는 지방에서 양고기를 숯불에 구운 요리, 혹은 닭고기와 계란을 함께 끓여낸 도로 왓(Doro Wat)과도 뛰어난 조화를 이룹니다. 베르베레(berbere)라는 향신료 믹스는 테즈의 독특한 꿀 향과 잘 어울리며, 강렬한 향신료 맛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특별한 날일수록 더 진하고 풍부한 맛의 테즈를 준비하며, 이는 곧 음식과 술이 하나의 코스처럼 구성된 전통 식문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테즈는 단순한 곁들이 술이 아니라, 식탁 위 중심에 놓이는 중요한 존재로서, 맛과 문화 양면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의 테즈: 보존과 재해석 사이에서
현대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에티오피아에서도 테즈는 여전히 중요한 전통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테즈를 맛볼 수 있는 '테즈 하우스(Tej House)'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테즈가 단순한 민속주를 넘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프리미엄 테즈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품질 관리와 패키징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양조장은 국제적인 슬로우푸드 운동과 연계하여 테즈를 세계적인 발효 문화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광객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 방식에 현대 기술을 더해 위생과 효율성을 높인 양조 방식이 확산되면서, 테즈는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전통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전통문화가 현대 사회와 만나 어떻게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꿀 와인 한 잔에 담긴 에티오피아의 향기

테즈는 단순한 술을 넘어서, 에티오피아인의 삶과 문화를 깊이 있게 담고 있는 발효주입니다. 꿀의 달콤함과 게쇼의 쌉쌀함, 그리고 오랜 숙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깊은 향은, 그 어떤 와인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테즈를 마시는 방식, 함께 나누는 분위기,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다른 어떤 나라의 술 문화와도 차별화되는 독특한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행자로서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테즈를 경험한다는 것은, 단지 이국적인 술을 맛보는 차원을 넘어 그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한 잔의 테즈를 통해 우리는 에티오피아의 역사, 자연,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잔 끝에 남는 꿀 향기 속에서 이 나라만의 고유한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테즈는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에티오피아인의 자부심으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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