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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류 탐방

겨울에 딱 어울리는 술, 루마니아의 자두 증류주 추이카 소개

by nottheendwrite 2025. 10. 26.

겨울에 딱 어울리는 술, 루마니아의 자두 증류주 추이카 소개

루마니아 가정의 술, 추이카의 탄생과 의미

 루마니아의 깊은 계곡과 과수원이 펼쳐지는 농촌 마을에서는, 한 해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자두나무 아래에서 수확의 기쁨이 시작됩니다. 그 수확물 중 일부는 잼이나 말린 과일로 저장되지만, 또 다른 일부는 뚜껑 달린 나무통 안에서 조용히 발효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이 발효된 자두가 특별한 증류 과정을 거쳐 술로 탄생하는데, 그 술이 바로 ‘추이카(Țuică)’입니다. 가정 단위로 전해 내려온 이 증류주는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단순한 술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마을 잔치, 가족 방문, 새해맞이 모임 등 다양한 순간에 건네지는 이 술 한 잔은 “환영”, “감사”, “기억”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겨울철 차가운 날씨 속에서 나무 난로 옆 따사로운 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외부로부터의 온기를 넘어 집 내부의 온정과 함께합니다. 이처럼 추이카는 루마니아 가정의 정서와 공동체의 끈을 담은 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큼한 자두와 가정의 손맛을 담은 증류 방식

 루마니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추이카의 원재료는 자두입니다. 특히 늦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 자두가 무르익는 시기가 오면, 농가는 수확과 동시에 일부 과일을 동결하거나 저장해 두고 겨울 전후 증류주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과일은 씨를 제거하고 으깨진 뒤, 오랜 시간 발효조 안에서 효모의 힘으로 알코올을 생성합니다. 이 가정용 발효조는 흔히 나무통이거나 스테인리스 컨테이너로, 마치 작은 술 농장의 시작점처럼 마을 구석에 자리합니다. 발효가 끝나면 전통적인 구리 증류기(가정에서는 ‘카잔(cazan)’이라 불리는)가 숯 또는 나무 불 위에 놓이고, 수증기와 알코올이 솟아오르는 증류 과정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은 수십 년 된 마을 어르신의 귀와 손맛이 반영된 것이기도 해서, 증류기가 내는 소리나 색의 흐름, 한 방울 맛보는 순간이 그 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섬세합니다. 증류 후에는 바로 마시는 ‘생 추이카’도 있지만, 일부는 나무통에서 수개월 혹은 수년간 숙성되면서 색이 살짝 금빛을 띠며 부드럽고 깊은 향을 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담근 이 과정은 과학이라기보다 ‘손맛’과 ‘경험’이 더 큰 몫을 차지하며, 그 수고와 정성이 술잔 한 잔 속에 담깁니다.

겨울을 녹이는 추이카 한잔에 담긴 문화

 추이카는 특히 겨울철에 더욱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루마니아의 산간 마을에서는 눈이 쌓이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그 시간에도, 마을 회관이나 가정 거실에서는 난로 하나 켜지고 술잔들이 돌기 시작합니다. 손님이 도착하면 주인이 먼저 추이카 한 잔을 권하며 “Noroc!”(노록, 건배)이라는 인사를 나눕니다. 잔은 차갑게 얼린 잔도 있지만, 때로는 실온에 조금 놓여 두어 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준비됩니다. 차가운 눈을 뚫고 들어온 손님에게 따뜻한 한 잔이 주는 위로는 단지 알코올의 열기가 아니라 ‘환대의 마음’입니다. 음식과의 조합도 흥미롭습니다. 절인 채소, 훈제 소시지, 삶은 감자 등 간단하면서도 풍미가 있는 안주와 함께 마시면, 추이카의 알싸한 풍미가 안주의 솔트감과 어우러져 더욱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숙성된 추이카 한 잔을 마신 뒤 난로 옆 창문 너머로 얼어붙은 마당을 바라보는 순간, 그 잔은 ‘휴식’이자 ‘순간의 온기’가 됩니다. 이렇게 추이카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겨울의 긴 밤을 잇는 문화입니다.

추이카의 종류와 숙성에 따른 스타일

 추이카는 지역, 농가, 과일 품종, 숙성 기간 등에 따라 여러 스타일로 나뉩니다. 기본적으로 ‘즉시 마실 수 있는 신선한 추이카(țuicăproaspătă)’가 있고, 나무통 숙성을 거쳐 색이 옅은 금빛으로 변하고 향이 더욱 풍부해지는 ‘오래된 추이카(țuicăbătrână)’도 존재합니다. 알코올 도수 또한 가정용과 숙성용 사이에 큰 폭의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약 40% 전후인 반면 숙성을 거친 것은 50%를 넘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두 번 증류한 비교적 부드러운 타입의 추이카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농가는 한 번 증류했지만 자두나무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시켜 매우 부드러운 질감과 복합적인 향을 담은 추이카를 만듭니다. 과일 품종 또한 중요합니다. 자두 중에서도 특정 산간지대 자두는 당도가 높아 증류 후 풍미가 깊고 장기 숙성에 적합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덕분에 추이카를 마신다는 것은 ‘내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여행객이나 술 애호가들은 작은 농가에서 ‘오늘 갓 증류한 신선한 추이카’와 ‘숙성된 한 잔’을 비교하며 즐기기도 합니다.

가정 증류주의 책임과 법률적 측면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증류해 만든 추이카는 루마니아 농촌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위생과 법률적 규제가 강화되면서 변화도 생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정량 이상을 증류하거나 판매할 경우 세금 제도와 허가가 필요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마을 전체가 허가된 증류기를 공유하고 ‘연례 증류 행사’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많은 가정에서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소량을 담그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여전히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기둥입니다. 동시에, 술의 도수가 높고 증류 방식이 주관적일 수 있기에 책임감 있는 음용과 증류가 중요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습니다. 가정 증류주라는 성격 덕분에 ‘누가 만들었느냐’가 신뢰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방문객에게 작은 한 병을 선물로 내놓는 것도 흔한 관습입니다. 이렇게 추이카는 ‘가족의 술’, ‘마을의 술’로서 지속 가능성의 가치까지 담아냅니다.

추이카 한 잔에 담긴 루마니아의 마음

 추이카를 마신다는 건 단순히 알코올을 섭취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일이 익고, 손때 묻은 나무통이 숨을 쉬고, 농부가 증류기 앞에서 기다리던 순간이 잔 위에 담겼다는 뜻입니다. 추이카 한 잔이 가진 의미는 ‘환대’, ‘공유’, ‘기억’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특히 겨울밤 난로 앞에서 입김이 살짝 맺힌 잔을 들고 “Noroc!”이라 외치는 순간에는, 한 모금이 마을과 계절의 온기를 옮겨오기도 합니다. 만약 언젠가 루마니아의 어느 집 마당에 앉아 추이카를 마실 기회가 생긴다면, 잔을 들고 잠시 정면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세요. 그 잔 속에는 단지 ‘술’이 아니라, 자두나무의 수확, 겨울 댓바람, 손을 맞잡고 건배했던 순간들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시는 한 잔은 외롭지 않고, 차갑지 않고, 진정한 온기를 지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