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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류 탐방

발트해의 향기를 담은 술, 라트비아 '리가 블랙 발삼' 이야기

by nottheendwrite 2025. 10. 27.

라트비아의 전통주 ‘발삼’은 어떤 술일까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에서는 오래전부터 ‘발삼(Balsams)’이라는 이름의 술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흔히 ‘리가 블랙 발삼(Riga Black Balsam)’으로 불리며, 짙은 색의 리큐어 형태를 띤 이 술은 단순한 음용 알코올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재료가 빚어낸 전통 그 자체입니다. 약용 허브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이 술은 과거에는 질병을 다스리는 자연의 약처럼 여겨졌고, 지금은 라트비아의 자존심이자 대표적인 전통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술의 기원은 18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약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발삼은 진한 허브 향과 깊은 풍미 덕분에 귀족과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후 라트비아 전역으로 퍼지며 민중의 술로 자리 잡게 됩니다. 흑갈색 병에 담긴 이 술은 그 외형만으로도 시간을 담은 듯한 묵직함이 전해집니다. 차가운 겨울이 긴 발트해 지역에서는 따뜻한 난로 옆에서 발삼 한 잔을 마시며 몸을 녹이는 풍경이 일상이었고, 지금도 가정집이나 선술집에서 손님을 맞을 때 이 술을 내어놓는 문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허브와 향신료의 오묘한 조화, 발삼의 재료와 맛

발트해의 향기를 담은 라트비아 리가 블랙 발삼이야기

 

 발삼이 특별한 이유는 그 재료의 복합성에 있습니다. 이 술을 구성하는 원료는 대략 20가지 이상이며, 허브와 뿌리, 과일껍질, 나무껍질, 향신료까지 다양한 자연 재료가 포함됩니다. 민트와 시나몬, 생강, 카르다몸, 라벤더, 블랙커런트 같은 익숙한 재료들이 이 술의 뼈대를 이루고, 각기 다른 재료가 숙성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어우러져 독특한 향과 풍미를 완성합니다. 특히 발삼은 한 모금 마셨을 때의 첫인상과 목 넘김 이후 남는 여운이 전혀 다릅니다. 처음엔 씁쓸하고 강한 허브 향이 먼저 느껴지지만, 곧이어 달콤한 과일 향이 올라오고, 마지막엔 혀끝을 감싸는 따뜻한 스파이스가 잔잔히 남습니다. 이것이 발삼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술이 아니라 ‘약초차를 우려낸 듯한 알코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발삼은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닙니다. 실제로 라트비아에서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따뜻한 차에 발삼을 몇 방울 떨어뜨려 마시거나, 배탈이 났을 때 소량을 입에 머금는 전통적인 민간요법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기능보다 ‘풍미’와 ‘전통’의 가치로 즐기는 이들이 많지만, 술잔 하나에도 자연과 건강을 생각하던 조상들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발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술입니다.

발트해 지역의 술 문화와 연결된 발삼의 정체성

 라트비아를 포함한 발트해 국가들, 즉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은 모두 차가운 해풍과 긴 겨울을 견디는 기후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술 문화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면역력 강화나 건강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들 국가의 전통주 대부분은 도수가 꽤 높고, 허브나 향신료가 첨가된 경우가 많습니다. 발삼은 그런 기후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술입니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특별한 날뿐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마무리에도 이 술을 즐깁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나 차와 함께 발삼을 내놓는 풍경도 드물지 않습니다. 또한 발트해 지역의 다른 전통주들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삼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쌓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의 트라켈리스(Trakelis)나 에스토니아의 반탈(Vana Tallinn) 같은 리큐어도 발삼과 유사한 방식으로 허브를 활용하며, 발트 해역의 술 문화 전반이 이처럼 식물의 향과 온기를 술에 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각국의 술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술을 통한 소통의 철학은 닮아 있습니다.

발삼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

 발삼은 도수가 강하고 향이 진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는 술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작은 잔에 한 모금씩 따뜻한 차나 커피와 곁들여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따뜻하게 데운 주스나 허브차에 한두 스푼의 발삼을 더해 ‘겨울 칵테일’처럼 즐기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발삼을 활용한 칵테일 레시피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과 주스에 발삼을 섞어 얼음을 띄우거나, 다크 초콜릿 리큐어와 혼합해 디저트 와인처럼 마시는 방식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상큼한 감귤류의 주스와 섞으면 허브의 씁쓸함과 과일의 상큼함이 어우러진 신선한 풍미가 만들어지며,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곁들인 레시피도 추천합니다.
 페어링 음식으로는 초콜릿 디저트, 치즈, 허브 향이 풍부한 고기 요리 등이 잘 어울립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술은 ‘혼자 조용히 음미하는 시간’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바쁜 하루 끝에 조용한 음악과 함께 발삼 한 잔을 마신다면, 그 풍미는 단순한 맛을 넘어 마음의 안정까지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전통에서 현대까지, 변화를 받아들이는 발삼

 발삼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현대의 감각과도 잘 어울리는 술입니다. 라트비아 내에서 다양한 브랜드가 크래프트 발삼을 선보이고 있으며, 원래의 레시피에 베리를 더하거나, 알코올 도수를 낮춘 버전을 선보이는 등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도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발삼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정성’에 있습니다. 이 술은 여전히 소량 생산 방식이 유지되고 있으며, 허브 추출 및 숙성 과정도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이는 대량 생산과는 다른, 한 병 한 병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은 감동을 줍니다. 또한  국제적인 주류 시장에서도 발삼은 조금씩 그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럽의 바텐더들은 이 독특한 리큐어를 창의적인 칵테일 재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라트비아의 술 문화가 더 넓은 무대에서 주목받게 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그렇기에 발삼은 전통 속에 머물기보다는, 변화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시대와 함께 걸어가는 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