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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류 탐방

우크라이나의 허브와 과일이 담긴 술 나스토이카(Nastoyka)의 문화

by nottheendwrite 2025. 10. 27.

허브와 과일이 술잔에 녹아든 문화, 나스토이카

우크라이나의 허브와 과일이 담긴 술 나스토이카(Nastoyka)의 문화

 

 우크라이나에서 ‘나스토이카(Nastoyka)’는 자국의 자연을 담아낸 향신술(히드로스피리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곡물이나 감자 증류주(혹은 보드카 베이스)에 과일, 베리, 허브, 뿌리 등을 우려내거나 숙성시켜 만든 술로서, 그 색과 향이 매우 다양합니다. 과일이 숙성되면서 나오는 자연의 단맛이나 허브의 쌉싸름한 여운이 술잔을 통해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나스토이카 한 잔에는 '자연의 향기와 기억’이 살아 있습니다.
 이 술의 역사는 15세기 이후 우크라이나 농가에서 자급자족 방식으로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증류주를 바탕에 두고 베리나 뿌리, 허브 등을 넣어서 숙취를 덜하거나 병마를 달래기 위해 마시기도 했고, 오늘날엔 오히려 그 풍미와 향기로 인해 미식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집안에서 수확한 체리, 자두, 허브 한 묶음이 곧 나스토이카의 재료가 되었고, 그것이 다시 가족과 손님을 잇는 술잔으로 전해졌다는 점에서 이 술은 ‘농가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나스토이카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알코올을 즐기는 행위가 아니라, 과일과 허브가 자란 들판을 떠올리고, 그 과일을 두고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술잔 위에 담긴 자연과 사람의 조우를 음미하는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스토이카 원료에 담긴 이야기

 나스토이카의 매력은 무엇보다 ‘원료의 다양성’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은 자두, 체리, 블랙커런트, 라즈베리 등의 베리와 과일인데, 과일이 발효 증류주에 담겨 숙성되면서 그 본연의 향을 술에 입힙니다. 자두로 만든 나스토이카는 깊고 진한 과일의 향이 먼저 떠오르고, 목 넘김 뒤에는 나무껍질이나 미묘한 스파이스 향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블랙커런트나 라즈베리 같은 베리로 만드는 경우보다 경쾌하고 신선한 과일향이 중심이 되어 초심자에게도 접근성이 좋습니다. 허브와 뿌리를 활용한 버전도 주목할 만합니다.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허브나 뿌리를 증류주에 우려내 만든 나스토이카는 단지 ‘맛있는 술’이 아닌 ‘약용 술’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홀스래디쉬(horseradish)를 넣거나 들소풀(bison grass)을 활용한 나스토이카는 향이 강하고 독특합니다. 허브의 씁쓸함, 뿌리의 흙내음, 그리고 증류주가 가진 알코올향이 한데 어우러지면, 술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에센스를 맛보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이처럼 나스토이카는 원재료가 어떤 것이었는지, 얼마나 우려냈는지, 숙성은 얼마나 되었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하게 맛보면서 ‘나만의 한 잔’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스토이카의 전통 제작 방식과 현대적 부활

 농가 가정에서 만들어지던 나스토이카는 비교적 간단한 원리지만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수확한 과일이나 베리, 허브를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썬 뒤, 증류주 베이스(보통 우크라이나 전통 증류주 ‘호릴카(horilka)’ 또는 곡물 기반 증류주)에 담가 숙성합니다. 일부는 설탕이나 꿀을 조금 첨가해 단맛을 살리기도 하고, 병에 과일을 통째로 담아 우려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온도와 시간, 그리고 재료의 신선도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따뜻한 방에서 숙성하던 것처럼, 오늘날 일부 양조장에서는 온도 제어 숙성 탱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크래프트 증류’ 흐름 속에 나스토이카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가족 레시피로 시작해서 작은 양조장을 차린 브랜드도 있고, 허브와 베리를 베이스로 만든 나스토이카가 해외 국제 주류 대회에서 상을 받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대량생산되는 술들과 달리 ‘이야기를 담은 술’로서 나스토이카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줍니다. 전통의 방식에 현대적인 필터링이나 숙성 방식이 더해져 품질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행객이나 미식가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통 술’로서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즉, 나스토이카는 집안이나 마을의 과일을 이용해, ‘누군가의 정성과 손맛이 담긴 술'을 마신다는 경험을 준다는 것입니다.

나스토이카의 음용 방식과 문화

 나스토이카는 마시는 방식에도 문화가 숨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얇은 잔에 따라 차갑거나 실온의 온도에서 한 모금씩 음미합니다. 먼저 잔을 손에 들고 과일이나 허브가 남긴 향을 맡는 순간이 중요하며, 이어서 천천히 마시고 여운을 길게 느끼는 것이 관례입니다. 특히 뛰어난 나스토이카는 한 모금을 머금은 뒤 잔을 기울이고 향이 퍼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식사 자리에서는 전채요리나 가볍게 절인 채소·훈제 생선·치즈와 함께 곁들이는 경우가 많으며, 페어링의 재미가 풍부합니다. 허브 기반 나스토이카라면 약간 매콤하거나 향이 강한 반찬과도 어울립니다. 또한 손님을 환영할 때, 혹은 특별한 모임에서 건배사로 “За здоров’я!”(자 즈도로비야! = 건강을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들어 나스토이카를 나누는 풍경도 자주 보입니다. 축제나 명절 기간에는 과일을 수확한 후에 장식된 병에 담긴 나스토이카가 마을 회관이나 가정의 장식장 한쪽에 자리 잡고, 방문객에게 작은 한 잔을 권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이처럼 나스토이카는 마시는 대상이 아니라 ‘공유하는 대상’으로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나스토이카의 현대 트렌드 및 글로벌화

 전통 가정 증류주에서 시작된 나스토이카는 최근 들어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수제 증류소가 등장했고, 과일 및 허브 잔향을 살린 프리미엄 라인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일부 브랜드는 해외 수출을 통해 그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국제 증류주 대회에서 수상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는 나스토이카가 단지 ‘가정 술’이라는 틀을 넘어, 세계 미식가들이 찾는 독창적 증류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칵테일 문화와의 접목도 활발합니다. 허브 나스토이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 바 메뉴에 올라가거나, 과일 기반 나스토이카를 디저트 와인이나 리큐어처럼 활용하는 방식도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나스토이카가 과거의 전통에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만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인 양조가들은 여전히 “원재료의 음성과 손맛을 잃지 않는 술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습니다. 즉, 대량생산보다는 소량정성, 고급보다는 진정성에 무게를 두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나스토이카를 마실 때면 병 뒷면의 과일 종류, 숙성 기간, 허브 유무 등을 살펴보게 되는 즐거움도 생깁니다.

한 잔의 나스토이카에 담긴 이야기

 나스토이카 한 잔에는 베리와 허브가 자란 정원, 손으로 과일을 담그고 술로 만든 시간, 그리고 마시는 이와 나누는 대화가 담긴 경험이 녹아있습니다. 유리잔 속에서 열매의 색이 반짝이고, 허브의 향이 코끝을 스치며, 그 뒤에 이어지는 여운이 머무는 동안 우리는 그 맛이 지닌 깊이와 문화를 느끼게 됩니다.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나스토이카 잔을 들어 과일향이 퍼지는 시간을 잠시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속으로 “이 과일이 어떻게 이 술이 되었을까?” “누가 이 병을 담그고 이 잔을 나눴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 술은 훨씬 더 특별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