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다른 사케의 매력, 알고 마시면 훨씬 즐겁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일본 사케에 대해 궁금해본 적 있을 겁니다. 다 같은 쌀로 만들고, 발효 방식도 유사한데, 왜 사케는 지역마다 맛이 그렇게 다를까? 이유는 일본의 지역적 특징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을 가지고 있어, 지역마다 기후와 수질, 쌀의 품종, 양조 기술이 다르고, 이러한 요소들이 사케의 맛과 향, 질감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이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니는 것처럼, 사케 역시 일본 각 지역의 풍토와 문화가 술에 녹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지역에 따른 사케의 주요 특징을 정리해 보고, 사케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한 제품도 함께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지역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케를 알아보고, 취향에 맞는 지역의 사케를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홋카이도 & 도호쿠 지역 사케의 특징: 차가운 기후 속 맑고 깔끔한 맛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와 그 아래 도호쿠 지방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기온이 낮아 사케 양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케의 발효 과정에서 온도는 아주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기온에서는 발효가 느리게 진행되면 사케 특유의 잡미가 줄고 깔끔한 맛을 유지하기 쉬워집니다. 이런 조건 덕분에 이 지역의 사케는 대체로 ‘탄레이 카라쿠치(淡麗辛口)’ 스타일, 즉 산뜻하고 드라이한 맛이 특징입니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가볍기 때문에, 사케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니이가타현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사케 명산지로, ‘사케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니이가타는 연평균 강설량이 매우 많은데, 그 눈이 녹아 지하로 스며든 청정수는 사케 양조에 훌륭한 재료가 됩니다.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음식 문화는 담백하고 염분이 낮은 요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술도 그에 맞춰 깨끗하고 산뜻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케 브랜드로는 하쿠라이슈, 하쿠산, 킨마이 등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저온에서 서서히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차가운 생선회나 가벼운 안주와 함께 마시면 그 섬세한 맛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대표 양조장 & 제품
- 하쿠라이슈(白瀧酒造) - 조엘로 준마이긴조: 투명한 향과 깔끔한 목넘김
- 하쿠라이텐(八海山) - 준마이슈: 절제된 향과 담백한 맛이 돋보이는 인기 사케
간사이 & 추부 지방 사케의 특징: 균형 잡힌 맛과 풍성한 향미
간사이와 추부 지방은 일본 사케 양조의 중심지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이 풍부해 사케를 만들기에 매우 적절합니다. 특히 효고현은 일본 최고급 양조용 쌀인 ‘야마다니시키’의 주요 생산지로, 이 쌀로 만든 사케는 향이 좋고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간사이 사케의 가장 큰 특징은 ‘균형감’으로 드라이하거나 단맛에 치우치지 않고, 부드러움과 감칠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기 좋은 사케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다사이(獺祭), 키쿠마사무네(菊正宗), 겟케이칸(月桂冠) 등이 있습니다. 이들 제품은 일본 내수 시장뿐 아니라 해외 수출량도 많아,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입니다. 다사이의 제품 중 '준마이 다이긴조 39'는 맑고 투명한 과일 향이 느껴지며, 입에 닿는 느낌이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사케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첫 잔부터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어 추천하는 제품입니다. 간사이 지역은 교토, 오사카, 고베 등 음식 문화가 발달한 도시들이 밀집해 있어, 사케도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리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닭고기 요리, 생선조림, 각종 전골요리와 곁들이면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의 사케의 특징을 정리한다면 화려하진 않지만, 마실수록 편안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양조장 & 제품
- 다사이(獺祭) - 준마이 다이긴조 39: 과일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단맛
- 키쿠마사무네(菊正宗) - 드라이한 타입의 전통 정통파 사케로, ‘정종’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음
규슈 & 시코쿠: 따뜻한 기후 속 깊고 부드러운 여운
일본의 남쪽 끝에 위치한 규슈와 시코쿠 지방은 비교적 따뜻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적 특징은 사케에 색다른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이 지역의 사케는 전반적으로 풍부하고 묵직한 맛, 약간의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앞에서 설명한 북부의 깔끔하고 드라이한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지닌 술입니다. 특히 규슈는 원래 소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케를 빚는 양조장도 꾸준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들의 사케는 장인의 철학이 깊이 배어 있으며, 소량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희소가치도 높습니다.
후쿠오카나 사가, 구마모토 등지의 양조장은 지역 쌀과 물을 사용해 '테루아르 사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술은 규슈식 돼지고기 요리, 간장 베이스의 짭짤한 찜요리와 같은 지역 특유의 요리와 궁합이 좋으며 매콤한 한국 안주와도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시코쿠 지방에서는 도쿠시마, 에히메 현의 소규모 양조장이 유명하며, 과일 향과 깊은 단맛이 공존하는 사케가 많습니다. 이런 사케는 치즈나 버터가 들어간 요리와도 잘 어울립니다. 또한, 큐슈 사케는 온사케로 마실 때 진한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에,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방식도 적극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따듯한 남쪽 지역의 사케는 마치 가을 저녁 같은 포근한 인상을 줍니다. 와인의 ‘바디감’과 비슷한 느낌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지역 사케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 양조장 & 제품
- 니시키노오토(西酒造) - 준마이슈: 구수한 맛과 함께 묵직한 감칠맛
- 아마모토(天の戸) - 지역 쌀과 물로 만든 ‘테루아르 사케’ 스타일
사케를 처음 마신다면, 이 제품부터 추천합니다
사케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마셔본 적이 없거나, 어떤 걸 고를지 몰라 망설이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처음부터 복잡한 종류나 강한 향을 지닌 제품을 선택하면 오히려 사케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드럽고 마시기 쉬운 제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사케를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초심자라면 온라인이나 전문 주류 매장에서 추천을 받아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래는 사케 입문자에게 적합한 제품 3가지입니다.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음식과의 궁합도 좋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1. 다사이 준마이 다이긴조 39 (Dassai 39)
과일 향이 풍부하고,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단맛이 특징입니다.
냉사케로 즐기면 향이 살아나고, 초밥이나 회와 함께하면 궁합이 뛰어납니다.
2. 하쿠츠루 준마이슈 (Hakutsuru Junmai)
일본 대형 양조장에서 만든 스테디셀러로, 은은한 맛과 깔끔한 피니시가 장점입니다.
뜨겁게 데워 먹는 온사케로도 부담이 없고, 전통 일식뿐 아니라 간단한 안주와도 어울립니다.
3. 키쿠마사무네 탄레이카라쿠치
사케 본연의 ‘드라이’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감칠맛이 좋아 구이 요리나 조림류와 잘 어울리며, 데워 마셔도 훌륭한 균형감을 유지합니다.
지역을 알면 사케가 보인다

사케는 마치 지도를 그리듯, 지역의 성격이 술의 향과 맛으로 나타나는 술입니다. 기온, 물, 쌀, 사람의 손길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병 안에 담기는 셈이죠. 어떤 이는 홋카이도의 서늘하고 투명한 사케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규슈의 묵직하고 구수한 풍미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다양하지만, 각 지역의 특색을 이해하고 고르면 실패 확률이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부담 없이 다사이 같은 입문용 사케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고, 어느 지역, 어느 스타일의 사케가 입에 맞는지 스스로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