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에서 현대 터키까지 이어진 라크의 역사
터키에서 ‘라크’라 불리는 이 술은 단순한 술이라기보단 오랜 시간 동안 사회와 문화 속에 녹아든 존재입니다. 지금 마시는 라크와 비슷한 형태는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했지만, 포도나 과일 찌꺼기(포마스)로 증류주를 만들고, 여기에 아니스 향을 가미한 방식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이미 존재해 왔습니다. 포도 재배가 활발했던 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라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양조장도 형성되었고, 이는 터키의 국민주라는 명성을 얻게 된 기반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국영 주류회사에 의해 체계적인 생산이 이뤄지며 대중화되었고, 지금은 다양한 민간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라크를 양조하고 있습니다. 라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물이나 얼음을 넣으면 우유처럼 뿌옇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마치 사자의 우유 또는 젖 같다고 하여 ‘아슬란 쉬위(사자의 우유)’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술의 특징에서 비롯된 이런 별칭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라크가 터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라크는 터키의 식문화, 가족 문화, 심지어는 예술과 문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인과 음악가들은 라크에 대한 시와 노래를 남기며, 이를 통해 감정과 철학을 풀어냈습니다. 오늘날에도 라크는 단지 술이 아니라, 터키의 감성과 함께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집니다.
라크의 맛과 특징

라크는 기본적으로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포마스(pomace) 또는 사탕무 부산물을 증류한 뒤, 아니스라는 향신료를 넣어 만든 고도수 증류주입니다. 일부 프리미엄 라크는 포도만을 원료로 사용하며, 향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오크통 숙성을 거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제조 방식에 따라 라크의 풍미는 다소 차이를 보입니다. 라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아니스 향인데, 이는 마실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알싸한 허브 향으로 표현됩니다. 한 모금 마시면 입안에 특유의 향긋한 감칠맛이 남고, 뒤끝이 깔끔한 편입니다. 도수는 평균적으로 40~50도 수준으로 꽤 높은 편이지만, 물이나 얼음과 섞어 마시기 때문에 체감 알코올 농도는 비교적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이 과정에서 잔 속의 색깔이 투명에서 우윳빛으로 바뀌는데, 류수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아니스 성분이 물과 반응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런 시각적 변화 덕분에 라크는 마시는 재미 외에도 보는 재미가 더해집니다. 터키에서는 이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라크 마시는 문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술 자체의 맛뿐 아니라 분위기와 과정까지도 함께 즐기는 것이 라크 문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크 마시는 법과 음식 페어링
라크는 반드시 음식을 곁들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술입니다. 단순히 안주와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술이 서로 맛을 살려주는 구조로 발전해 왔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조합은 ‘흰 치즈와 멜론’입니다. 짭조름한 페타 치즈와 달달한 멜론이 라크의 향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이 두 가지 안주는 터키 식당의 라크 테이블에서 빠지지 않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여기에 가지 요리, 병아리콩 무침, 해산물 요리 등 다양한 메제가 함께 차려지면, 그 자체로 훌륭한 만찬이 완성됩니다. 라크는 특히 해산물과의 조화가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데, 이는 그 특유의 깔끔한 피니시와 허브 향이 생선 요리나 문어, 오징어 같은 요리와 궁합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현지인들은 라크를 마시며 음식을 천천히 나누고, 식사 시간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하나의 소셜 이벤트가 되도록 즐깁니다. 이처럼 라크는 음식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대화를 유도하는 역할까지 해줍니다. 이 점에서 보면 라크는 단순한 주류가 아니라 '터키식 대화 문화'의 일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행자에게 권하는 한 잔의 경험
터키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라크와 관련된 풍경이 빠질 수 없습니다. 저녁 무렵, 에게 해안가의 작은 식당에서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가운 라크 한 잔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터키의 감성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복잡한 메뉴판 없이도 흰 치즈, 멜론,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라크 한 병이면 충분히 훌륭한 저녁이 완성됩니다. 무엇보다 라크의 진가는 천천히 시간을 들이며 사람들과 함께 마실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터키 사람들은 라크를 급하게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을 비우기보다는, 한 모금씩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고, 웃고, 노래를 부르며 식탁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행자에게도 이 문화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단순한 음주 경험이 아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한 나라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터키를 찾게 된다면,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현지인의 라크 테이블에 함께하며 더욱 잊지 못할 여행의 기억을 남겨보시길 바랍니다.